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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 도어락에 카드를 가져다대니 짧은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팟-하고 켜진 조명 아래 비춰진 대리석이 깔린 현관에 축축하게 젖은 신발 두 켤레가 채워진다. 이어지는 길에도 또르르 굴러 떨어진 물방울이 흔적을 남긴다.

“에어컨부터 켜요.”

 

“내가 할게. 일단 먼저 씻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먼저 들어가. 츳키. 젖은 탓에 짙은 색으로 변한 금발을 가진 남자에게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젖은 머리를 한 남자가 말했다. ‘츳키’라 불린 남자는 캐리어에서 갈아입을 옷들을 들고서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펼쳐진 캐리어의 끝에서도 똑 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후우, 하필 지금 비가 와서…”

 

 

 

 남겨진 남자, 그러니까 쿠로오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분명 기차역에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역시 여름에는 햇볕이 뜨겁다며 조금은 약해도 되지 않느냐며 농담 식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요 입이 문제인가. 우울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행 와서 계획되지 않은 비가 반가울 리가 없다. 하필이면 이번 여행에서 이럴 게 뭐란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행은 쿠로오 테츠로와 연인, 츠키시마 케이가 성인이 된 기념으로 떠나는 여행이자 단둘이 떠나는 첫 번째 여행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 설렘이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서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이러다가 만나는 시간에 늦겠다며 몇  번이고 실랑이하고서 겨우 잠들기 전 통화를 끝냈던 그들이었으니 여행 당일의 기대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행여 지루하지 않겠냐는 걱정에 노트북에 많은 종류의 영화까지 넣어온 쿠로오였지만 노트북이 그의 가방에서 나올 일은 없었다.

 

‘츳키, 혹시 심심하다거나 지루하면…’

‘쿠로오씨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요.’

 평소라면 이런 말을 해줄 리가 없는 츠키시마일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쿠로오씨, 감동 받았어! 그치만 시끄러운 건 싫은데요. 그 한마디에 바로 조용해지는 쿠로오였지만 맞잡은 두 개의 손은 풀리지 않은 채였다. 결국, 전날의 두근거림으로 인해 부족했던 잠이 기차의 흔들림과 만나 두 사람에게 단잠을 선물하기 직전까지 그들 사이의 달콤한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물에 젖은 옷가지들을 모아 비치되어 있던 바구니에 모았다. 쿠로오는 아까 올라오기 전 호텔 프런트에서 보았던 세탁 서비스를 떠올렸다. 이따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맡겨야겠다. 그는 나머지 소지품들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물기를 닦아내고 행여나 말려야 하는 것들은 조심스럽게 마르기 좋도록 올려놓았다. 그리고 쿠로오가 집어든 것은 츠키시마의 지갑이었다.

 

 얇은 여름 옷차림이었기 때문일까. 그의 지갑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안에는 괜찮으려나. 심플한 디자인의 츠키시마의 지갑은 그의 형인 아키테루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인의 지갑을 몰래 보는 것은 미안했으므로 쿠로오는 지폐를 넣는 부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안쪽까지 크게 젖은 것은 아니었지만 위쪽 부분이 젖어 있는 몇 장의 돈이 보였다.

 

“어라? 이게 뭐지?"

여름

질리언 (@Gelio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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