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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돌담 안쪽 벚꽃 잎이 만개한 나무의 가지들이 바람결에 움직인다. 하얀 눈처럼 바닥으로 내려앉은 꽃잎들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깜박였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아래로 떨구며, 긴 호흡과 함께 뿌연 연기가 토해진다. 내리쬐는 봄날의 햇살이 조금씩 스며들고 어둠이 사라졌을 무렵 그는 이미 자리를 떠나버렸다. 기나긴 세월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던 고목 하나만 오롯이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넓은 저택 안에서 가장 안쪽, 멋없게 ‘ 쿠로오 공방 ’ 이라고 써진 팻말 하나 세워놓은 작은 공간.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시야 가득 들어오는 다기들을 하나, 둘 확인한다. 언제부턴가 항상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있는 그것들을 확인하는 버릇. 제 자리를 찾아 진행 중이던 작업을 하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이것저것 참견을 하다 보니 또 날이 저물어간다. 하루가 참 빨리도 지나간다. 아직 무언가 한 것 하나도 없이. 이렇게 하릴없이 지나간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 보고 싶다.
영영 다시는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녀석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그저, 버릇없는 어린애였을 뿐인데. 첫인상도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녀석은 이상한 것 투성이였다. 끝까지 물음표만 남긴 녀석.
- 낡았네. 버리지 그래?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귀염성 없는 음성이 들린다. 별 볼일 없는 찻잔들만 있다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소년의 등장에 작업을 하던 쿠로오의 손이 멈춰졌다.
“보이진 않지만, 담겨있으니까.”
“뭐가?”
“맞춰 보든가.”
“별로. 흥미 없어.”
“어린 게 말 한번 예쁘게 한다.”
“그러는 자기는.”
‘형한테 자기가 뭐냐, 말본새하곤.’ 작게 중얼거리듯 말을 건네고선 소년의 머리를 익숙하게 쓰다듬는다. 쿠로오의 손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기까지 얼마나 지난 걸까. 처음 본 그 날처럼, 어른의 손에 의해 온 소년의 눈동자가 무심히 공간을 훑어간다. 관심을 갖지 않을 법한 얼굴로 제법 진지한 눈빛이 쿠로오의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열여섯이라 한다. 그것도 입을 다문 소년 대신 곁에 서있는 소년의 아버지의 음성을 빌린 소개였다.
“안녕, 난 쿠로오 테츠로다.”
너는? 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니 귀찮다는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츠키시마 케이.’ 무엇이 그렇게도 간결한지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츠키시마였다. 하얀 얼굴하며, 까칠한 성격까지 딱 귀한 도련님 태가 났다. 어쩌면 자주 볼 일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럼에도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성은 다르게 말한다. 중년 남성의 손을 잡고 돌아서서 가는 츠키시마의 뒤로 쿠로오의 음성.
“또 보자,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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